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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모르지만 공부하며 끄적이는 경제이야기/이런저런 잡담이야기

쉽고도 어려운 20대 초반 사회생활 이야기

by 정신없는 개미 2022. 11. 4.

안녕하세요. 개미입니다. 오늘은 저의 20대 초반 때의 사회생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40대 초반으로 중소기업 부장 자리에 있습니다. 벌써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0년 정도네요.

저의 첫 사회생활은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학까지 알바로 회사생활을 3개월간 맛보기로 하다가 대학 진학 후 1년을 미친 듯이 놀기만 하다 보니 성적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래서 휴학을 하고 군입대 지원을 하고 대기기간 동안 알바로 일하던 회사에 막내로 입사하여 1년 반 정도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낮에는 상사들의 잔심부름과 밤에는 술상대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군입대를 하고 논산훈련소에서 재신체검사를 받고 우안 난시로 인해 4급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고 4일 만인가 퇴소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재입사를 하고 일을 조금씩 배워나가던 도중 군문제를 해결하고자 병역특례로 한 회사에 입사하여 2년 반 근무조건에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첫 업무는 생산라인에서 일을 하며 계속 반복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제가 일하던 라인은 예전 모대기업 DVD롬 생산하는 라인이었는데 한 라인이 ㄷ자형태로 되어있고 20여 명 정도의 작업자가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침 7시 출근에 야근이 끝나면 밤 10시 또는 12시 퇴근인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몸도 많이 힘들고 체력적으로 남아나 질 않더군요. 토, 일에 명절 휴일도 단 하루에 연차 같은 것은 있는지도 모르고 일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9개월 정도 후 생산팀장님이신 차장님께서 부르시더니 저보고 생산라인 관리를 해볼 생각이 없냐고 하여 반복 작업에 지쳐있던 저는 흔쾌히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생산라인 관리를 시작하였습니다. 아... 생각보다 힘들더군요. 사람 관리하는 게 이렇게나 힘들 줄이야... 친하게 같은 작업자로만 지내던 여사님들과 외국인 산업연수생들도 제가 관리자로 변경되니 갑자기 저에게서 거리를 두고 텃세를 부리기 시작하더군요. 나이도 20대 초반이라 엄청 무시하고 제 말은 듣지도 않더라고요. 다른 팀 형들이랑 술을 한번마시는며 업무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더니 초반에 다들 겪는 문제라고 말하며 두 파로 나뉘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한쪽은 강하게 나가서 초반에 기선제압을 하라는 것이고 다른 한쪽은 잘 구슬려서 풀어나가라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생산라인이 돌아가는데 생산 수량이 너무 안 나오길래 확인해 보니 새로운 작업자가 기기랑 본인 키가 잘 안 맞아서 작업이 불편해 라인에 부하가 걸리고 있었더라고요. 그래서 쉬는 시간에 1층 목공실에 가서 합판으로 작은 발 받침대를 만들어왔더니 2시간이나 지나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못질과 톱질은 너무 힘들더군요. 너무 오래 라인을 비워놨다가 차장님께 엄청 혼이 나고...(사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인권 같은 것은 꿈도 못 꿀 때여서 많이 맞았습니다. 하하하) 그렇게 크게 혼이 나는 것을 본 저희 생산라인분들이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지시사항에 대해 따라와 주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일단 작업자들이 불편한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최대한 공정개선에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하니 조금씩 생산속도도 나오고 작업자분들과도 다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라인 관리를 하면서 공정 작업자를 순환 교육시키라는 윗분의 지시에 아직 숙련도 안돼어있는 작업자들의 업무 공정을 무리하게 일찍 바꾸어서 생긴 생산 감소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윗사람의 지시가 있으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따랐던 것 같습니다. 

 생산성도 조금씩 올라가고 사람들도 조금씩 따라와 주니 조금씩 일이 할만하더라고요. 제시간도 조금씩 나고요. 하지만 계속된 7시~24시 근무가 지속되니  체력적으로는 너무 힘들었습니다. 가끔씩은 철야작업도 있고 그럴 때는 철야작업 끝나고 옥상에서 형들과 출근하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담배도 한대 피우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회사 다니면서 선반 드릴 다루는 법, 톱질, 목질, 전동드릴, 조이 고플고, 간단한 전기작업, 등등... 잡다한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움이 많이 되었던 회사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공장이 지방으로 이사를 간다고 하여 병역특례라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경기도 안성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총 5차 정도로 나누어 이사를 했던 것 같은데 저는 2차 정도로 갔던 것 같습니다. 새로 생긴 라인에 관리자들이 많이 그만두면서 혼자 50여 명의 인원을 관리하고 지내기 시작하는데 새로운 작업자들도 많고 하니 정신없이 또 몇 달은 지낸 것 같습니다. 퇴근하고 사내 기숙사에 들어가면 구조가 한방에 2층 침대 게 4개 욕실 및 화장실은 옆방이랑 같이 쓸 수 있는 방이었습니다.... 기숙사내 음주, 흡연 가능... 10시 12시에 일이 끝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 룸메이트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으면 같이 껴서 한잔 먹다가 2~3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서 다시 출근... 반복된 생활... 그런 허무한 생활이 하기 싫어서 늦은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고 일만 계속했습니다. 그 덕분에 병역특례 신분인데도 진급을 하여 반장이라는 첫 직책을 얻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진급에 너무 기분이 좋고 더욱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제품에 반복된 문제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며칠을 뜯어보고 확인해 본 결과 금형의 문제인 것을 발견하고 친하게 지내던 형한테 해당 문제의 원인을 말해줬더니 저 없는 사이에 본인이 확인하고 알아낸 것처럼 차장님께 말을 했더군요... 참 기가 차서 말도 안나 옵니다... 20년이 지났는 데로 그때 상황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잘 대응했었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후회스럽더라고요. 그 후로 갑자기 그 형은 저에 대해 위에 안 좋은 얘기를 하더니 저는 결국 야간조로 편성되었습니다. 그 형은 저녁 6시 출근 아침 6시 퇴근... 처음 하는 야간근무는 주간 근무 때보다 업무시간은 짧았지만 퇴근 때 사람이 멍해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내가 맡은 일이 있으니 근무시간만은 최선을 다해서 했던 것 같습니다.

병역특례를 8개월 정도 남겨둔 어느 날 회사에서 특례 직원들에게 퇴사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2달 내로 퇴사 진행하라는 명령에 부랴부랴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식품회사로 급하게 옮겼습니다. 전신을 다 감싸는 흰색 작업복 및 위생모에 비닐 앞치마 무릎까지 오는 고무장화를 신고 생산라인에 투입 하루 종일 포장하고 냉동창고에 보관하는 업무였습니다. 두 가지 기억에 남았던 것은 식품회사의 온갖 소시지 햄류가 섞여있던 그 냄새와 갓 만든 따뜻한 소시지의 맛...

이전 회사에서 사람한테 뒤통수 맞고 힘들게 노력해도 결국 회사에서 필요 없으면 쫓겨난다는 생각에 식품회사에서는 진짜 너무 대충대충 일했었습니다. 술 먹고 무단결근도 몇 번 하다가 회사에서 경고도 내려오고 바빠서 야근 있는 날도 정시만 채우고 자취방으로 바로 퇴근하면서 6개월을 마치고 소집해제날이자 퇴사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수고했다고 다들 웃으면서 보내주셨는데 6개월간의 저의 업무 태도에 대해 엄청 후회스러웠습니다.

병역특례 받는 동안 대학도 자퇴하고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고 지방에서 계속 이력서를 내봤지만 번번이 탈락... 어느 박스 만드는 공장에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는 얘기에는 하기 싫다고 나가지 않고... 3개월 정도를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공무원 준비를 하자하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워낙 책이랑은 담을 쌓고 지내서 1~2년가량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보니 어느덧 27살이 되고 나니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걱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병역특례 전에 다녔던 회사의 임원분이 그래도 작은 회사를 소개해주셔서 입사를 하고 제조업 공장에 팀 막내로 입사하여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절주절 두서없이 글을 써나가다 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참 사회생활은 쉬우면서도 어려운듯한 것 같네요.